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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tionSouthVietnam

베트남 공화국(베트남어: Việt Nam Cộng Hòa비엣남 꽁호아/ 越南共和?, 월남공화) 또는 남베트남1954년부터 1975년까지 북위 17도 베트남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했던 나라로, 군사분계선 이북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과 대치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결되며 프랑스비엣민의 휴전으로 195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분단되었다. 때로는 베트남 공화국의 전신인 베트남국을 남베트남의 역사에 포함하기도 하나, 대개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존속하였던 베트남 공화국만을 일컫는다. 정치이념에 따라 북베트남과의 구분을 위해 자유 월남, 자유 베트남 등으로도 불렸다.


국명의 변천사[]

역사[]

베트남국[]

이 부분의 본문은 베트남국입니다.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다른 지역(안남, 통킹, 캄보디아, 라오스)이 보호령이었던 데 반해 베트남 남부 코친차이나는 사이공을 수도로 하는 식민지 지위에 놓여 있었다. 1862년 프랑스에 합병된 후, 프랑스 국회에 보낼 대표자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따라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다른 지역에 비해 프랑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에 프랑스는 코친차이나를 베트남의 다른 지역과 독립된 지위를 유지하여 속칭 "인도차이나 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유지하려 했으나 비엣민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트남국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인 1949년 6월 14일, 반공주의 베트남인과 프랑스 정부에 의해서 세워져 국가 원수로 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 다이가 취임했다. 프랑스는 베트남국에 부분적인 자치권을 주었다. 그러나 호찌민이 이끄는 비엣민은 이를 거부하고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을 얻을 때까지 투쟁하였다.

195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베트남국은 북위 17도 이남을 잠정적으로 통치하고, 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러나 선거와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베트남의 분단이 결정되자 주로 가톨릭을 믿는 약 80만-100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공산주의자들로의 박해를 피해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 이주하였다. 1955년 10월 22일, 응오딘지엠이 "베트남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바오 다이 황제를 폐위시켰다.

베트남 공화국[]

베트남 공화국은 응오딘지엠이 1955년 세운 남베트남의 나라이다. 197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 및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붕괴될 때까지 존속했다. 불교도와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공산폭동이 자주 일어나 혼란 그 자체였으며 베트콩들 또한 공세를 취해서 남베트남 대부분을 빼앗았다. 미군이 투입되었지만 끝내 물거품이 되었다. 드디어 197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구정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수도인 사이공이 함락되고 대통령궁에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됨에 따라 종말을 고했다.


베트남 공화국의 국가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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