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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KTUR~1

돌궐(突厥, 불가리아어: Гоктюрки 고크튜르키, 터키어: Göktürk Kağanlığı 괵튀르크 카안르으[*], 551년-747년) 또는 괵튀르크(𐰜𐰇𐰚 𐱅𐰇𐰼𐰜, Göktürk)는 천산 산맥에서 발원한 철륵의 하위 부족이다. 돌궐은 튀르크의 가차(假借)식 표기이며, ‘주서(周書)’ 이역(異域) 돌궐(突厥) 열전은 “돌궐은 대개 흉노의 별종이다”라며 흉노의 후손이라고도 하였다. 557년의 영토는 6,000,000km²이다. 괵튀르크는 하늘의 튀르크 혹은 천상의 튀르크라는 의미이다.


개요[]

당시 강자로 군림하던 유목 제국 유연을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에서 만주 지방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세력 확장을 펼쳤다. 그러나 동, 서로 분열되어 동돌궐은 당에 복속하게 되었고, 서돌궐은 이슬람화 되었는데 그 중 오구즈 투르크멘 부족이 셀주크 제국의 기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99년 튀르크 족은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고구려와의 대외 관계는 거란말갈의 지배권을 놓고 대립하다가 의 통일 후 일시적 소강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서 돌궐은 고구려 원정에 동참하며 다시 한번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중국과의 관계[]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 북방 초원의 강자로 등장한 세력은 돌궐이었다. 중국이 오랜 분열기를 마감하고 589년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했을때, 당시 북방의 돌궐과 수나라가 대치하게 되었다. 북방의 강자 유연을 멸망시킨 새로운 패자 돌궐은, 중국과 대립관계가 된다.

6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자 수나라는 서돌궐이 동돌궐을 공격하도록 부추겨 동돌궐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동돌궐은 수나라에 신속하고 둘 사이는 군신관계가 성립되었다. 수나라와 돌궐 사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새롭게 당나라가 건국되는데,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린 당나라는 돌궐에게 신하로서 복종하고 양국의 군신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돌궐에 내분이 일어나고 자연재해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당과 돌궐의 관계는 역전된다. 당은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돌궐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하고, 돌궐의 힐리 카안(頡利 可汗, Kieli Kağan, Hieli Kağan, İliğ Kağan)은 당나라에 신속하면서 당과 돌궐 사이에 군신관계가 성립한다. 중국과 돌궐의 관계를 보면 주도권 관계가 서로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분열되면 중국이 돌궐에 복속되고, 돌궐이 분열되면 돌궐이 중국에 복속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궐이 우위인 상태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는 돌궐 자체가 내부 결속력이 약해 늘 내분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고,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중원 왕조는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돌궐의 분열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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